
아이를 낳고 싶어?
5년 전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렸던 나이지만 그 때는 세상을 알아 간다고 약간은 우쭐해있을 시절, 엄마와 "왜 헤어진 연인은 다시 만나고 싶어할까" 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너무 인상 깊은 주제라 그 때도 블로그에 글을 남겼었죠.
제 답변은 "그 때의 내가 그리워서" 였어요. 다시 만난다는 건 그 시간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게 미련일 수도, 희망일 수도 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지만 본질은 "그 시간이 그리워서" 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시간 속 무엇이 그리운걸까요? 저는 그 순간 속 내가 그리워서라고 생각해요. 그 때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나면 그 때 행복했던 나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사실 처음으로 재회라는 걸 (ㅋㅋ) 할 때 먼저 떠오른 영화였어요. (재회? 난 재회라는 말도 웃겨) 만약 이 여정이 다시 또 파국을 맞는다고 해도 그 곳까지 가는 순간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소감은 한 번 가본 길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야~ 또 다른 느낌으로 괜찮지가 않더이다.
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영화 컨택트 (원제 어라이벌. 원제를 더 좋아하는 관계로 이하 어라이벌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는 시간 서술 트릭이 있는 영화입니다. 제 경우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보러 갔기에 더욱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낀 지점이 많았죠. 그 동안 봤던 서술 트릭의 작품들이 대부분 반전을 위해서였다면 <어라이벌>은 서술 트릭 그 자체가 영화의 본질이었으니까요.
전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영어 이름도 Hannah 로 지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Hannah는 미국 이효리거든요. 이처럼 그 순서를 반대로 해도 똑같은 발음인 단어를 ‘회문’ 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를 통해 회문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회문(回文), 몇 개나 아시나요? - 시사주간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회문, 영어용어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 합니다.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어렵게 느껴지시나요?‘기러기’라는 같은 말을 뜻합니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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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회문으로 적어보라면 윤회라고 불리겠죠.
윤회: 인간이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함
이 영화의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의 작가 테드창의 다른 대표작 <바빌론의 탑> 을 봐도 윤회 사상 또는 시간의 비선형 흐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걸로 보여요. 그가 쓴 글 속 끝은 시작과 맞닿아있었죠.

영화 속에서 외계인과 하는 소통에 관련한 수수께기가 모두 풀리고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역) 는 시간을 넘나들며 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 언어학적인 과정이 조금 더 자세히 나와있어요. 그들의 말에 시제가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 시간 구분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시간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면 시간이 의미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는 현재와, 현재는 미래와 또 미래는 과거와 닿아있음을 의미한다. 그 들의 시간은 비선형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들의 언어를 체득하며 루이스도 이러한 경험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루이스가 외계 존재 언어를 이해할 수록 현재 (또는 과거) 에서 자신이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연출합니다. 영화 말미 그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순간, 그 어린 아이가 누구인지 깨닫죠.
원작을 영화와 비교를 한다면, 아무래도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 효과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루이스가 한나와 보냈던 시간들 (한나가 화를 내기도 둘이 함께 웃으며 즐거웠던 시간 모두를) 관객들에게 영상으로 보여주죠. 그 외에도 원작과 약간 다른 점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가 조금 더 루이스의 '부모' 적인 부분은 강조한 걸로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성인보다는 아직 어린이인 자녀가 죽을 때 그 고통이 클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한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한나와 함께했던 그 10년이 채 되지 않는 순간을 위해 기꺼이 한나를 만나러 간다는 마음
영화 <나비효과> 의 안티테제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나비효과> 는 약간 '오 베비 그대여 그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요' EXID L.I.E 적 영화잖아요.

한나를 잃는 그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사실 한나를 가지지 않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하면 됩니다.- 허무주의와 닿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고통을 아래와 같은 대사로 정면돌파 하죠.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m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이 여정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 모든걸 끌어안을거야.
그리고 끝을 향해 가는 모든 순간을
반갑게 맞이할거야.
결국 도착지보다는 도착지로 가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행운으로 기억할 기쁨인걸까요. 아쉽게도 저는 루이스는 아니기에 어디가 도착지일지 모르겠지만, 만약 지금이 도착지에서 하차해야하는 순간이라고 해도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게 한 그 시간들이 저를 이 곳에 불러온 것이겠죠.
사실 저도 영화 <나비효과> 처럼 생각했던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뭐.... 이런 말 제가 할 줄 몰랐지만 그 모든 순간이 있었기에 이 글을 쓰는 저도 있는 거겠죠. 현재가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고통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그게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가 지금 느끼는 모든 고통도 나를 둘러싼 슬픔도 모두 내 안에서 시작하는 걸요. 그리고 이런 감정들을 흘려 보내기 위해서는 이를 ‘과정’ 이라고 생각해야하고요.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을 돌이켜보면 여정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는 용기도 남에게 찾을 수는 없어요. (아는 것과 실천할 수 있는 건 느므느므 다르다 …)
이 영화와 한 수필 덕에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뀔 수 있었어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지난 연말, 모교에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TED x 한양, 오늘은 그 강연 원고를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양대 92년도 졸업생 김민식입니다. 87년도에 한양대 산업공학과에 지원했는데요, 내신등
free2world.tistory.com
기회가 닿을 때 마다 주변에 소개하는 글입니다.
이제 "아이를 낳고 싶어?" 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끝에서 이렇게 들립니다. 루이스는 그 아픔을 겪어보았음에도 기꺼이 긍정의 대답을 내리겠죠.
한나를 만나고 싶어?

저는 드니 빌뇌브가 너무 좋아요. 찬란한 광선검과 시선을 빼앗는 CG가 아니더라도 고요함 속에서 발전된 기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감독이거든요.
개인적으로 모순적인 연출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듄 세계관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하거든요. 너무 발전 하다 못해 파괴 과정을 겪고 다시 시작하는 문명이라니. 이도 크게 보면 윤회와 닿아있지요.

Breaking Baz: Denis Villeneuve Reveals He Will Go Back Behind Camera “Faster Than I Think” To Make Third ‘Dune’ Movie
Denis Villeneuve reveals to Deadline that he will go back behind the camera “Faster Than I Think” to make the third ‘Dune’ Universe movie.
deadline.com
듄: 메시아가 생각보다 빨리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라네요.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거 된다. 너무 잘한다. 감사합니다. 드니 빌뇌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