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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불완전하다

triangleofsadness 2025. 1. 11. 02:12
아뇨 엄청 했어요


위스키 광고 촬영 현장, 일본인 감독이 미국인 배우에게 일본어로 세세하게 디렉팅을 합니다. 카메라를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아라,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해라, 그런데 통역사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전달합니다. 카메라를 봐라.
배우 입장에서 이상하죠. 분명 말이 통하지 않는 저 일본인 감독은 자세하게 디렉팅을 내리고 있는데, 나에게 전달되는 말은 "카메라를 봐라" 한 마디니까요.

이렇게 통역사가 생략한 말들을 "Lost in Translation" 라고 합니다. 통역 과정에서 생략되는-사라지는- 언어들을 의미하는 말로 번역/통역 과정에서 많이 언급 하는 오역/의역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오역은 "잘못 번역하다" 그리고 의역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어 번역하다" 지만 통역 과정에서 사라지는 말들은 통역사의 자의 또는 상황에 맞추어 생략하는 말이니까요.

Lost in Translation 을 통역의 불완전성이라고 말하는 건 의역의 영역이죠. 직역을 한다면 통역 과정 중 상실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한국 제목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는 오역일까요 의역일까요? 이 원제를 가져올 때 "사랑" 을 넣음으로서 로맨스 영화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고, "통역"을 넣어서 영화를 관통하는 expat 의 외로움, 혼란스러움을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로맨스 영화보다는 expat인 샬롯의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오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 속 도쿄에 떨어진 샬롯과 밥 의 존재가 "불완전" 합니다. 검은 머리 일본인만 가득한 도쿄에서 금발의 샬롯과 남들 보다 키가 훤칠하게 솟은 밥의 모습을 보면 정말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특히나 샬롯은 더욱 Lost 한 느낌이죠. 밥은 광고 촬영을 위해 도쿄에 잠시 온 여행객에 가까운 신분이지만, 샬롯은 도쿄에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닌 남편을 따라 온 Expat 이니까요.

Expatriate (Expat) [ eks│peɪtriət ]
: 국외거주자

저도 이 단어를 아마.. 토익 공부를 하면서 외웠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잊지 않을 단어가 된 것은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에요.
"So are u expat?" 이라는 채팅을 보는데 expat 이 뭐지? 검색하자마자. 맞네. 나 expat 이네?
샬롯 (스칼렛 요한슨) 은 사진 작가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떨어진 미국인입니다. 남편은 '할 일'이 있어서 매일 바쁘기라도 하지 샬롯은 여기서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혹자는 부럽다고 할 수 있죠. 정말 외국에 긴 시간 동안 '쉬러' 간 거니까요. 하지만 샬롯에게는 죽을 맛입니다. 여러가지 취미생활도 도전해봤지만 자신에게 맞는 건 없고 여행도 그다지 재밌지 않죠.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친구도 친구의 일상을 살고 있으니 어떻게 지내. 라는 말에 전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응, 잘 지내" 뿐입니다. 사실 이 장면 직전 연기가 정말 공감이 됐는데요.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으나 현실적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은 진심과 다르니 이를 연출한 방법에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똑같이 그러고 있으니까요.


저는 항상 글을 쓰고 싶어했어요.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제 이름으로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거든요. 영화 리뷰를 하나의 글로 완성 시키고 싶었고 또 번역을 하고 싶었어요. 특히나 번역/통역이란거 다른 두 세계를 잇는 연결 다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원문을 가지고 재창작을 하는, 하지만 그 의미는 지켜야하는 너무나 매력적인 재해석의 과정이니까요.


그래서 이 문장을 두고 재밌는 연습을 해봤어요.
I gotta get out of here 를 넷플릭스에서는 “나 출국하고 싶어” 로 번역했지만 저는 “여기서 빨리 도망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로 읽혔습니다. (출국하고 싶다는 번역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에게 저 문장을 번역해보라고 한다면, 많은 말을 두고 고민하겠죠. 아마 처음에는 떠나고 싶어. 라는 말을 쓸겁니다. 왜 주인공이 떠나고 싶을까? 주인공은 지금 일본이 물린 상황입니다. 가식적인 일본의 접대, 뭐 하나 맞지 않는 호텔의 기구들, 모르는 언어들이 범벅인 이 곳에서요. 그렇다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겠구나. 최종적으로는 도망치다와 벗어나다에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출국" 은 좀 더 공식적인, 정말 일정을 끝내고 다시 본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정적인 느낌이라고 하면 "도망친다/벗어난다" 는 지금 주인공이 느끼는 상황이 ’지긋지긋하다‘ 는 느낌까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자신의 일을 끝내고 저벅저벅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혼자 일본에서 모르는 언어로 둘러쌓여 있는 상황이 고되고, 얼른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까지 담고 싶으니까요.
80%만 이해 되는 언어로 둘러쌓여 있어도 지치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는 언어만 들린다? 이거 고문입니다. 진짜 지쳐요.

이처럼 하나의 원문을 두고 사람 마다 다르게 읽히는게 너무 좋았어요. 크게 오역을 하지 않는 선에서 번역가의 시선이 담기는 재해석이 발생한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사실 번역에서 발생하는 이런 상황은 비단 외국어 소통에만 국한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세상을 바라 보고 있으니까요. 세상 모든 대상과 이루는 소통은 나의 세계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불완전한 번역이 발생하겠죠.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정말 상대를 100% 알고 싶다면 번역... 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지요. 그렇데 자꾸 그 차이와 다름을 없애고 '나' 로 상대를 느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니 결국 사랑은 인류의 대비극입니다. (누구야 누가 인류의 대비극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다름은 좁힐 수 없어요. 다르다고 상대에게 실망해서도 안 되더라고요. 다르다는걸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영화에서도 "넌 너무 남을 비난해" 라는 대사를 하지만 굿바이 키스를 하고 헤어지는 그 커플이 이혼위기를 겪고 있다거나 둘의 마음이 식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까요.  

만약 캐릭터를 둘 다 싱글로 설정했거나 어느 한 쪽이 위기를 겪는 상황으로 설정했다면 이 영화가 ‘불륜’ 논란에 얽힐 일은 없었겠죠. 아마 각자의 커플이 있는 상태에서 도쿄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공감하는 상황을 쥐여준 것은 그 들이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혼자라 외로워서" 또는 "지금 현재 파트너에게 위기를 겪고 있어서" 는 아니겠죠. 그 들은 굳이 말하면 아쉬울 게 없는 상태이지만 도쿄라는 이질적 공간에 와서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 지점에 포커스를 두었다면 둘을 각각 결혼 커플로 설정하는 것도 이해가 가죠.

취향 갈릴 만한 영화고 누군가에게는 공감 지점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외살이에서 느낀 고단함이 있던 분들은 샬롯의 표정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고, 모든 상황이 들뜨는 여행이 아닌 업무로 또는 다른 이유로 국외에 체류 했던 분들은 밥의 표정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불륜보다는 각각의 캐릭터의 지친 지점을 보다보니 딱히 불륜이라는 포인트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샬롯에게는 밥도 떠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래서 그 이후에 더 권태와 외로움을 느낄 샬롯이 궁금하더라고요. 샬롯은 본국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남편이 있는 일본에 남았을까요. 그런데 저는 샬롯이 남았을 것 같아요.. ㅋㅋ 샬롯이 미국에 돌아갈 사람이라면 진작 갔을 것 같아서요. 사람 마다 해석은 갈리겠죠. 2000년대 초반 영화의 색감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Q.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A. 통역… 보다는 상대의 언어를 직접 알아가길 바랍니다. 상대와 나의 언어가 가진 차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해보다는 존재학적으로)
그 때에 사랑은 통역을 필요로하지도, 그리하여 통역에서 오는 불완전함도 (lost in translation) 존재하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