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겠습니다
- 평점
- 9.2 (2025.01.01 개봉)
- 감독
- 이와이 슌지
- 출연
- 나카야마 미호, 사카이 미키, 카시와바라 타카시, 토요카와 에츠시, 시오미 산세이, 한 분자쿠, 카가 마리코, 타구치 토모로오, 미츠이시 켄, 나카무라 쿠미, 스즈키 란란, 스즈키 케이이치
영화 ‘러브레터’ 는 비공식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재개봉한 영화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영화관에서 자주 만나봤던 영화입니다, 일본 문화 개방 이후 가장 큰 센세이션을 몰고 온 작품이다보니 그러겠죠.
‘오겡키 데스까’ 라는 대사가 가장 유명하고 한국 미디어 매체에서도 이가 다수 오마주 되었습니다. (트와이스-what is love 뮤직 비디오에서도 멤버 중 지효가 맡은 영화가 바로 러브레터임을 설원 장면으로 손 쉽게 알 수 있죠. 이와 별개로 이 노래.. 왜 들을 때 마다 슬플까요.)

누군가의 사랑은 끝나고, 대신 같은 얼굴을 한 여자에게는 1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히로코와 이츠키(여) 의 얼굴들을 속도감있게 번갈아서 보여주는 연출에서는 감정이 ‘몰려온다’ 는 생동감까지 동시에 드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어요. 바로 글 제목으로 적어두었죠.



후지이 이츠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남자 애였던 “후지이 이츠키“ 의 마음을 후배들을 통해 알게 되는 장면입니다. 나카시마 미호의 겸연쩍은 미소와 살짝 맺히는 눈물, 그리고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에는 눈이 정말 많이 나와요. 그리고 눈은 흡음력이 좋아 사람들은 눈이 오는 날을 더 고요하다고 느끼는 거 아시나요?
화면에 가득차는 눈 덕분에 하얀 색감으로도, 고요한 오디오로도,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눈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에 더욱 집중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죠. 특히 처음 시작할 때 히로코가 숨을 오래 참았다가 터트리며 설원을 걸어 나가는 롱테이크 신은 정말 아름답고요.
그런가하면 이츠키가 죽은 산 속 산장 장면에서 함께 잡히는 눈은 무섭기도 하고, 그 다음 날 아침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를 향해 안부를 건내는 장면에서 잡히는 하얀 눈은 모든 마음을 여기 쏟아내고 가라는 듯 고요하게 히로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주변인의 ‘죽음’이 중요한 소재인 영화입니다. 후지이 이츠키(남)의 산악 조난 사고와 1주기 를 계기로 히로코의 편지가 시작하죠. 그런가하면 후지이 이츠키(여) 아버지의 죽음은 이 가족에게 금기시 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터트려서 묵은 감정을 해소해야하는 주제였고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남은 자들이 하는 추모의 시간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인물들이 죽은 자들에게 가졌던 감정들은 하얗게 쌓인 세상 속으로 고요히 사라지죠.
What is love가 슬픈 노래라고 하는 이유
어떻게 보면 지금 저의 영화 테이스트를 구축하는 데 뿌리 같은 영화라 ‘러브레터’를 그 동안 굳이 언급하지 않았네요. 하지만 이제와서 언급하는 이유는


또개봉 한댄다.
기왕이면 눈이 많이 오는 날 보러 가세요.
목도리도 하나 포근하게 매고 말이죠.

2023년 2월,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 원초적 비디오 본색전시회에서 이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편집한게 이 영화를 향한 애정이 보이는 편집이라 너무 좋았어요.
이 영화 제목인 ‘러브레터’ 속 발신인과 수신인은 누구일까요. 10년이 넘어서야 보내는 후지이 이츠키(남)가 후지이 이츠키(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한다면 히로코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영화 속에서 히로코의 울음 섞인 대사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마음의 힘을 믿지만, 빛 바래지 않는 감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세월 동안 후지이 이츠키(남)이 히로코에게서 첫 사랑의 흔적을 찾았을 수도 있지만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히로코와 결혼을 약속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계기였을 뿐이죠. 애초에 자신의 첫사랑에게만 계속 마음을 준 상태였다면 히로코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푸른 산호초” 를 부른 이유에 대하여도 의견이 갈린다고 하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감상도 궁금하네요.
언젠가는 영화 러브레터와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삿포로에 가야겠습니다.

글 작성 중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